비가 내렸던 그날.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었으며 천둥이 치던 그날.
"나는 내가 가장 아끼던 나의 테이머를 잃었다."
어쩌다가 그를 잃어버린지는 이제 점점 기억이 흐릿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꼭 기억하고 있다.
그저 내 방심이다. 내 방심으로 그를 죽게 만들었다.
그래. 그 빌어먹을 방심.
기억을 생각해보려고 어떻게든 노력했다.
그때 나는 메마른 평원을 탐험중이었다. 그는 항상 한결같았다. 항상 나를 귀찮게 만들었고, 항상 내 날개를 가지고 장난쳐대는 그런 좀 많이 귀찮은 녀석이었다.
여러 테이머들은 여기 이 평원을 세마리씩 데리고 다니지만, 당시 나는 어떠한 동족들과 붙어도 지지않을 정도로. 그 정도의 강함을 가지고 있었기에. 혼자서 다니기 충분했다. 거기에 정령의 힘도 또한 빌렸으니 그곳에서 여러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다니기 충분했었다. 그도 테이머로써 좋은 인상과 행동을 가지고 있었기에,
누군가는 우리를 우상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우리에게 아모르에게 축복받은 자라고 불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역시 딴길로 새는군. 이 버릇은 역시 고쳐지질 않아서 문제다.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강한정도는 아니지만, 적당히 상대하기 좋았던 녀석들. 상대할 맛이 나는 녀석들. 하나하나 상대해가면서 날개에 큰 상처가 하나 생겼지만, 어차피 금방 치료되기에, 개의치 않고 그냥 사냥해갔다. 오후 쯤이었나. 비가오면서 눈이 보이는 범위가 적어졌던 때였다. 그때 몬스터 한마리를 발견했다.
난 이 괴물을 피했어야했다.
"그 빌어먹을 자식 때문에 그가 죽었어."
이곳에서는 처음 본 녀석 이였다. 약해보였고, 이마에 x자가 칼로 벤듯이 상처가 있었으며, 그저 칼 한자루만 쥔 채 서 있었다. 그 녀석은 날 보고는 바로 도망갔다. 우리는 그녀석을 쫓아갔다.
"이때 그 녀석을 피했어야했는데."
필사적으로 도망가던 그 녀석은 갑자기 그 도망을 멈췄다.
그리고선 괴상하게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때 그가 경고하는 신호를 줬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건 함정이었다. 그때 그 몬스터는 한마리가 아니었다. 백마리가 되어보이는 수였다. 하나하나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기술들로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 쓰러트려갔다. 다행히 내가 평소 상대하던 녀석들보다는 조금 약했기에 제거해내는건 쉬웠다. 그러나, 분명 다 제거 했는데, 분명 다 박살내고 날려버리고 베어갔는데, 마지막 남은 한마리가 우리에게 달려 들었다. 나는 나의 발톱으로 베어내려 했다. 근데 나에게 달려가는게 아니고 나의 테이머에게 달려가버린 것이다. 나는 최대한 빠르게 날아갔다. 그러나 날개의 힘을 잃고 넘어져 버렸다. 온갖 몬스터들에게 입은 상처의 고통이 퍼져버린 것이다. 다시 일어나서 테이머에게 달려가려 했다. 테이머를 바라본 순간.
그의 복부에 칼이 꽃혀있었다. 빠르게 달려가서 그 몬스터를 발톱으로 찍어내리고 찍어내리며 걸레짝을 만들어내고 그녀석에게 달려갔다. 위급했다. 간신히 숨이 붙어있는 상태다. 마을로 데려가야 했는데, 그가 내 발을 잡고 있었다. 왜 내 발을 잡은거지. 지금부터 빠르게 내려가면 너를 살려낼 수 있었어. 그런데 왜 잡은거야. 대체 왜.
그제서야 나는 볼 수가 있었다. 그에게 박힌 칼은 그저 그런 구려보이는 칼이 아니었다. 극독이다. 살아있는게 용했다.
녹아내릴것만 같은 칼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에게 울면서 사과했다. 미안하다고. 내가 조금만 더 빨랐으면, 조금만 더 강했다면, 너를 구할 수 있었는데. 이런 내가 너무 원망스럽다고. 나는 분노와 절망과 자기혐오와 슬픔의 감정이 합쳐진 상태로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날개에서 작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의 손이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그가 나에게 했던 말은.
"_____ , __ __ ___ ,
__ _ _____좋겠어."
그는 숨을 거두었다. 나는 그의 말하는 입모양만 보고 정확히는 듣지 못했다.
나는 그를 데려갔다. 마을로 돌아가서 시체가 되어있는 그를 본 사람들은 경악했고, 이내 나에게 원망의 감정을 드러냈다.
"나도 그를 죽게 만들기 싫었다고. 나도..."
나는 그의 무덤을 만들어준 사람들을 보고 다시 메마른 평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몬스터들을 가차없이 죽여댔다. 베고 찌르고 찍어내렸으며, 태우고 구멍을 내버리고, 죽이는 데에 온갖 힘을 다 썼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어떤 녀석들은 도망가고 없었으며, 많은 녀석들은 죽어서 흩어져버렸다. 기계가 파괴된 흔적과 죽은 식물들, 부서져버린 돌들과 부러진 검과 보호구들. 나는 언덕 위에 조용히 앉았다. 이내 잠을 잤다.
"_____ , __ __ ___ ,
너가 꼭 _____ 좋겠어."
이러고 아침이 밝았으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힘을 빼고 앉아있었다. 더이상 아무것도 안했다. 밥도 먹지 않았으며, 무언가를 사냥하지도 않았다. 그저 아래쪽만 바라보길 반복했다. 그러고는 몇일이 지났다.
몬스터는 한두마리씩 주변에 점점 생겼지만 이곳은 전혀 쳐다보질 않고 쳐다봐도 빠르게 눈을 피했다. 원래 몬스터들은 아무 감정없이 바로 덤비는게 몬스터일텐데 나만을 피해다녔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나를 피했다. 멀리서 보니 다른 테이머들은 몬스터를 자주 마주쳐서 싸우는것이 보였다. 모든 몬스터가 이상해진건 아닌 것이다. 그냥 나만 피해다니는 것을 알아챘다. 난 개의치 않았다. 그저 아래만 계속 보았다. 방해만 안하면 좋았기에 그들을 놔뒀다.
"_____ , 나는 __ ___ ,
너가 꼭 _____좋겠어."
그 다음날이다. 어느 한 테이머가 나를 발견했다. 처음 본 얼굴이다. 새로운 테이머인가. 그 테이머도 나를 피해다닌 몬스터처럼 나를 피했다. 그의 용들도 또한 비슷했다. 한 용은 나를 동족을 보는 듯한 눈이 아닌 겁먹은 듯 나를 쳐다보았으며, 다른 용은 나를 보고는 눈을 피하고 쩔절 맸으며, 한 용은 간신히 테이머를 지키려고 서있었다. 세 용과 테이머가 나를 보는 눈은 비슷했다. 상대할 수 없는 괴물.
그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다. 그와 세마리 용들은 메마른 평원을 재빠르게 떠났다. 어느날, 그 테이머가 또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강해보이는 세마리 용들로, 새롭게 찾아왔다. 누가봐도 싸우자는 뜻이었기에, 나는 그들을 상대했다. 그들은 생각보다 많이 강하진 않았다. 그저 몇분이면 끝날정도로. 물러가는 그들을 보고는 나는 다시 잠들었다.
"_____ , 나는 항상 언제나,
너가 꼭 _____ 좋겠어."
다시 다음날, 그 테이머가 다시 나를 공격했다. 이번에도 이겼지만, 이번엔 돌아오는 주기가 짧았다. 이번에도 이겼고 다음에는 여러 테이머들이 찾아와서 나를 공격했다. 점점 여러 테이머들이 모여든다. 이건 한 번 경험해본 적이 있다. 그가 말했었는데, 기었났군. 레이드다. 테이머들은 있는 치료제들을 하나하나 다 써가면서 나를 상대했다. 전에 몇 번 얼굴을 본 테이머와 그의 용들도 여러명과 여러마리 있었다. 한 용이 나에게 물었다. 대체 왜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냐고. 그제서야 물에 비친 나의 얼굴을 보았다. 그제서야 나는 알았다. 모두가 나를 피하고 두려워 했으며 겁먹었는지 알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아모르의 자손과 동급일 정도로의 힘을 지니고 있다. 그것도 부정적인 기운을 감싼 채로. 그리고는 지금 이 상태다. 나는 이제 이 녀석들을 상대해야 한다. 마지막 생각을 했다. 마지막 그의 말이 어떤 것이 었을까.
"_____ , 나는 항상 언제나,
너가 꼭 행복했으면 좋겠어."
...이거였구나.
나는 앞에 보이는 테이머들을 보고 미소지으면서 외친다. 아마 나는 이들에게 지겠지만, 각자의 벗인 테이머와 각자의 벗인 드래곤의 유대와 경험이 성장하겠지. 이것만으로도 벌써 즐거운데 각자 상대하면서 느낀 즐거움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곧 너를 만날텐데 각자 상대한 녀석들이 얼마나 강했는지 얘기도 해주고 싶은데 이것만으로도 벌써 행복하구나. 나는 미소를 짓고 이내 크게 외친다.
"나는 방패이자 창이다!
내 이름은 콘트라딕션.
온 힘을 다해서 나를
웃을 수 있게 해다오!"
길고 긴 싸움이 끝나고 나는 점점 흩어져간다. 누군가는 보상을 가지고 싸우고 있고, 누군가는 하나의 보상으로 행복해하며, 누군가는 나를 보고 울었으며, 누군가는 아직 나를 원망하고, 누군가는 행복해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웃으면서 생각한다.
역시 테이머랑 드래곤은 재밌다고.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다. 정말 그리웠던 내 친구의 목소리.
"콘트라딕션, 나는 항상 언제나 너가 꼭 행복했으면 좋겠어."